으로 意味。 韓国語単語・ハングル 바라보다 [パラボダ] 眺める、見つめる、望む 意味・活用・読み方と音声発音

韓国語で文法~고 나니(까)の意味・活用・例文

으로 意味

出大栗如梨. 닫기尾雞, 尾長五尺. 邑落雜居, 亦無城郭. 不知跪拜. 無長幼男女之別. 닫기頸垂耳. 大率皆魁頭露紒, 魁頭猶科頭也, 謂以髮縈繞成科結也. 紒音計. 布袍草履. 【集解】惠棟曰, 魏志云, 足履草蹻蹋. 닫기 121 輒以繩貫脊皮 縋以大木 嚾呼爲健 이 記事의 내용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成年式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할 때 사용하는 지게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三國志』韓傳에서 說明한 바와 같이 지게를 관찰해서 表現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3 諸年小勇健者 …… 以大繩貫之 종래에 이 記事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共同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成年式의 意味로 파악한 방향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골에서 農事나 作業에 사용한 지게를 풀이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成年式이라고 하여도 資料에서 보는 바와 같이 등가죽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國中에 일을 하거나 官家에서 城郭을 할 때의 作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의 표현이므로 지게를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千寬宇, 「三國志 韓傳의 再檢討」『震檀學報』41, 1976. 權兌遠,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8, 1977;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百濟硏究』9, 1978. 鑄方貞亮, 「古代に於ける勞働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卷 6號, 1939. 千寬宇,「三國志 韓傳의 再檢討-三韓攷 第2部-」『震斷學報』41, 1976. 權兌遠,「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第 8 輯, 1977;「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9, 1978. 三品彰英,『新羅花郞の硏究-朝鮮古代硏究第一部-』1943, 三省堂, 東京 『三品彰英論文集』6卷, 1974, 平凡社. 東京 鑄方貞亮,「古代に於ける勞動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6, 1939. 닫기, 羣聚歌舞, 舞輒數十人相隨蹋地爲節. 【集解】惠棟曰, 魏志云, 踏地, 低昂手足, 相應節奏, 有似鐸舞. 十月農功畢, 亦復如之. 諸國邑各以一人主祭天神, 號爲「天君 122 天君 祭天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시기에 이미 政治와 祭儀를 주관하는 人物들이 각기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좋은 例이다. 초기社會의 政治發展過程에서 보면 祭政一致社會였지만 여기서 分業化하여 政治와 宗敎的인 兩面이 갈라지고 있었다. 天君은 祭禮를 전담한 人物이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4 天君 天神에 祭를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社會에서는 祭政一致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社會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政治人과 司祭가 임무를 나누기 때문에 전문적인 司祭가 天君이 되었다. 歷史의 發展段階에서 보면 司祭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으며 점차 政治와 나누어 職分을 맡게 된다. 新羅의 王號인 次次雄, 혹은 慈充이 巫라는 『三國史記』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馬韓에서 天君이 있다는 것은 이미 政治的으로 王, 또는 臣智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각각 본래의 領域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暎順, 「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 「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朝鮮民俗學會. 許暎順,「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닫기」. 따라서 蘇塗를 세운다는 것은 그러한 別邑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神殿과 같은 機能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있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5 蘇塗 馬韓의 여러나라에는 別邑이 있는 바 이를 蘇塗라고 한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鬼神을 섬긴다. 學者에 따라서는 蘇塗가 境界표시라든가 또는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蘇塗는 韓國史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役割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蘇塗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各處에 散在하여 있으면서 農耕社會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丘秉朔, 「三韓의 社會法制」『友石大文理大法經大論文集』1969. 金貞培,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 「蘇塗의 宗敎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 「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 「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 1951. 村山正雄, 「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回淑,「蘇塗硏究」『慶熙大碩士學位論文集』1970. 金貞培,「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蘇塗의 政治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號, 1951. 村山正雄,「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닫기, 魏志曰: 「諸國各有別邑, 爲蘇塗, 諸亡逃至其中, 皆不還之. 蘇塗之義, 有似浮屠. 」 建大木以縣鈴鼓, 事鬼神. 其南界近倭, 亦有文身者. 輒以繩貫脊皮 縋以大木 嚾呼爲健 : 이 記事의 내용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成年式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할 때 사용하는 지게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三國志』韓傳에서 說明한 바와 같이 지게를 관찰해서 表現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3 諸年小勇健者 …… 以大繩貫之 종래에 이 記事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共同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成年式의 意味로 파악한 방향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골에서 農事나 作業에 사용한 지게를 풀이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成年式이라고 하여도 資料에서 보는 바와 같이 등가죽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國中에 일을 하거나 官家에서 城郭을 할 때의 作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의 표현이므로 지게를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千寬宇, 「三國志 韓傳의 再檢討」『震檀學報』41, 1976. 權兌遠,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8, 1977;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百濟硏究』9, 1978. 鑄方貞亮, 「古代に於ける勞働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卷 6號, 1939. 千寬宇,「三國志 韓傳의 再檢討-三韓攷 第2部-」『震斷學報』41, 1976. 權兌遠,「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第 8 輯, 1977;「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9, 1978. 三品彰英,『新羅花郞の硏究-朝鮮古代硏究第一部-』1943, 三省堂, 東京 『三品彰英論文集』6卷, 1974, 平凡社. 東京 鑄方貞亮,「古代に於ける勞動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6, 1939. 天君 : 祭天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시기에 이미 政治와 祭儀를 주관하는 人物들이 각기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좋은 例이다. 초기社會의 政治發展過程에서 보면 祭政一致社會였지만 여기서 分業化하여 政治와 宗敎的인 兩面이 갈라지고 있었다. 天君은 祭禮를 전담한 人物이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4 天君 天神에 祭를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社會에서는 祭政一致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社會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政治人과 司祭가 임무를 나누기 때문에 전문적인 司祭가 天君이 되었다. 歷史의 發展段階에서 보면 司祭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으며 점차 政治와 나누어 職分을 맡게 된다. 新羅의 王號인 次次雄, 혹은 慈充이 巫라는 『三國史記』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馬韓에서 天君이 있다는 것은 이미 政治的으로 王, 또는 臣智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각각 본래의 領域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暎順, 「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 「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朝鮮民俗學會. 許暎順,「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따라서 蘇塗를 세운다는 것은 그러한 別邑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神殿과 같은 機能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있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5 蘇塗 馬韓의 여러나라에는 別邑이 있는 바 이를 蘇塗라고 한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鬼神을 섬긴다. 學者에 따라서는 蘇塗가 境界표시라든가 또는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蘇塗는 韓國史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役割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蘇塗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各處에 散在하여 있으면서 農耕社會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丘秉朔, 「三韓의 社會法制」『友石大文理大法經大論文集』1969. 金貞培,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 「蘇塗의 宗敎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 「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 「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 1951. 村山正雄, 「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回淑,「蘇塗硏究」『慶熙大碩士學位論文集』1970. 金貞培,「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蘇塗의 政治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號, 1951. 村山正雄,「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그 나라 사람들은 씩씩하고 勇敢하여 젊은이들 중 築室하는 데서 일하는 사람은 매번 밧줄로 등의 가죽을 꿰어 큰 나무를 매어 달고 소리를 지르는데 [이것을] 건장하다고 한다. 122 輒以繩貫脊皮 縋以大木 嚾呼爲健 이 記事의 내용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成年式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할 때 사용하는 지게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三國志』韓傳에서 說明한 바와 같이 지게를 관찰해서 表現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3 諸年小勇健者 …… 以大繩貫之 종래에 이 記事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共同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成年式의 意味로 파악한 방향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골에서 農事나 作業에 사용한 지게를 풀이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成年式이라고 하여도 資料에서 보는 바와 같이 등가죽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國中에 일을 하거나 官家에서 城郭을 할 때의 作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의 표현이므로 지게를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千寬宇, 「三國志 韓傳의 再檢討」『震檀學報』41, 1976. 權兌遠,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8, 1977;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百濟硏究』9, 1978. 鑄方貞亮, 「古代に於ける勞働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卷 6號, 1939. 千寬宇,「三國志 韓傳의 再檢討-三韓攷 第2部-」『震斷學報』41, 1976. 權兌遠,「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第 8 輯, 1977;「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9, 1978. 三品彰英,『新羅花郞の硏究-朝鮮古代硏究第一部-』1943, 三省堂, 東京 『三品彰英論文集』6卷, 1974, 平凡社. 東京 鑄方貞亮,「古代に於ける勞動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6, 1939. 이 시기에 이미 政治와 祭儀를 주관하는 人物들이 각기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좋은 例이다. 초기社會의 政治發展過程에서 보면 祭政一致社會였지만 여기서 分業化하여 政治와 宗敎的인 兩面이 갈라지고 있었다. 天君은 祭禮를 전담한 人物이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4 天君 天神에 祭를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社會에서는 祭政一致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社會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政治人과 司祭가 임무를 나누기 때문에 전문적인 司祭가 天君이 되었다. 歷史의 發展段階에서 보면 司祭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으며 점차 政治와 나누어 職分을 맡게 된다. 新羅의 王號인 次次雄, 혹은 慈充이 巫라는 『三國史記』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馬韓에서 天君이 있다는 것은 이미 政治的으로 王, 또는 臣智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각각 본래의 領域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暎順, 「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 「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朝鮮民俗學會. 許暎順,「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닫기이라 부른다. 따라서 蘇塗를 세운다는 것은 그러한 別邑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神殿과 같은 機能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있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5 蘇塗 馬韓의 여러나라에는 別邑이 있는 바 이를 蘇塗라고 한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鬼神을 섬긴다. 學者에 따라서는 蘇塗가 境界표시라든가 또는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蘇塗는 韓國史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役割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蘇塗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各處에 散在하여 있으면서 農耕社會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丘秉朔, 「三韓의 社會法制」『友石大文理大法經大論文集』1969. 金貞培,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 「蘇塗의 宗敎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 「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 「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 1951. 村山正雄, 「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回淑,「蘇塗硏究」『慶熙大碩士學位論文集』1970. 金貞培,「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蘇塗의 政治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號, 1951. 村山正雄,「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닫기를 만들어 거기다가 큰 나무를 세우고서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귀신을 섬긴다. [馬韓의] 남쪽 경계는 倭에 가까우므로 文身한 사람도 있다. 輒以繩貫脊皮 縋以大木 嚾呼爲健 : 이 記事의 내용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成年式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할 때 사용하는 지게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三國志』韓傳에서 說明한 바와 같이 지게를 관찰해서 表現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3 諸年小勇健者 …… 以大繩貫之 종래에 이 記事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었다. 하나는 共同으로 일을 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이겨내는 成年式의 意味로 파악한 방향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시골에서 農事나 作業에 사용한 지게를 풀이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成年式이라고 하여도 資料에서 보는 바와 같이 등가죽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國中에 일을 하거나 官家에서 城郭을 할 때의 作業을 설명하는 과정에서의 표현이므로 지게를 지칭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 千寬宇, 「三國志 韓傳의 再檢討」『震檀學報』41, 1976. 權兌遠,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8, 1977; 「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百濟硏究』9, 1978. 鑄方貞亮, 「古代に於ける勞働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卷 6號, 1939. 千寬宇,「三國志 韓傳의 再檢討-三韓攷 第2部-」『震斷學報』41, 1976. 權兌遠,「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一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第 8 輯, 1977;「百濟의 社會風俗史 考察 二 -韓의 社會風俗을 中心으로-」『百濟硏究』9, 1978. 三品彰英,『新羅花郞の硏究-朝鮮古代硏究第一部-』1943, 三省堂, 東京 『三品彰英論文集』6卷, 1974, 平凡社. 東京 鑄方貞亮,「古代に於ける勞動組織變遷の一形態-南朝鮮の場合-」『社會經濟史學』9-6, 1939. 天君 : 祭天의식을 주관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 시기에 이미 政治와 祭儀를 주관하는 人物들이 각기 나타났음을 보여주는 좋은 例이다. 초기社會의 政治發展過程에서 보면 祭政一致社會였지만 여기서 分業化하여 政治와 宗敎的인 兩面이 갈라지고 있었다. 天君은 祭禮를 전담한 人物이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4 天君 天神에 祭를 드리는 사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초기 社會에서는 祭政一致가 보편적인 현상이었으나 社會가 세분화되기 시작하면서 政治人과 司祭가 임무를 나누기 때문에 전문적인 司祭가 天君이 되었다. 歷史의 發展段階에서 보면 司祭가 지도자로 등장하는 것이 매우 많으며 점차 政治와 나누어 職分을 맡게 된다. 新羅의 王號인 次次雄, 혹은 慈充이 巫라는 『三國史記』의 자료는 이러한 사실을 설명해 주는 좋은 例라고 할 수 있다. 馬韓에서 天君이 있다는 것은 이미 政治的으로 王, 또는 臣智같은 지도자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각각 본래의 領域을 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孫晋泰, 「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暎順, 「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 「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朝鮮民俗學會. 許暎順,「古代社會의 巫覡思想과 歌謠의 硏究」『釜山大碩士論文』1962. 許回淑,「蘇塗에 關한 硏究」『慶熙史學』3, 1972. 金貞培,「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따라서 蘇塗를 세운다는 것은 그러한 別邑을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神殿과 같은 機能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러한 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있었다. <참조> 『三國志』韓傳 註 25 蘇塗 馬韓의 여러나라에는 別邑이 있는 바 이를 蘇塗라고 한다. 그곳에는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매달아 놓고 鬼神을 섬긴다. 學者에 따라서는 蘇塗가 境界표시라든가 또는 성황당이라든가 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하지만 이 蘇塗는 韓國史에서 아주 드문 神殿의 役割을 수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므로 蘇塗는 한곳만 있는 것이 아니고 各處에 散在하여 있으면서 農耕社會의 여러 祭儀를 수행하던 곳이었다. 丘秉朔, 「三韓의 社會法制」『友石大文理大法經大論文集』1969. 金貞培, 「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 「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 「蘇塗의 宗敎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 「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 「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 1951. 村山正雄, 「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孫晋泰,「蘇塗考訂補」『朝鮮民俗』3. 1940. 許回淑,「蘇塗硏究」『慶熙大碩士學位論文集』1970. 金貞培,「韓國古代國家의 起源論」『白山學報』14, 1973;「蘇塗의 政治史的 意味」『歷史學報』79, 1978. 徐永大,「蘇塗의 政治的 性格」『서울大文理大學報』19, 1973. 千寬宇,「三韓의 成立過程」『史學硏究』26, 1975. 末松保和,「魏志韓人傳寸考」『歷史學月報』11號, 1951. 村山正雄,「魏志韓傳に見える蘇塗の一解釋」『朝鮮學報』9輯,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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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語勉強 助詞 ~로 / ~으로 ~に、~で(場所・目的など) 使い方と例一覧

으로 意味

バラバラに見るとわかりにくいので、意味の「重なり」を上の図で表してみました。 ご覧の通り、「先行」「原因・理由」「状態」の3つの意味において、「重なり」が見られます。 逆に言えば、それ以外の意味はそれぞれどちらかに「特有」のものだということです。 次に、それぞれの【用法】を例文と共に詳しく見ていきましょう。 (空間的羅列・主語1人) 나는 피아노를 치고 , 동생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先行文の動作は完了したものと理解される〔延世〕 ・先行文と後続文の主語は同一である〔白〕 ・ 하고서 、 하고 나서 と置き換えが可能〔白〕 ・先行文と後続文の位置を逆にできない〔林・白〕 (例) 아침밥을 일찍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손을 잡고 기뻐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 先行文 の 動詞 は 動作動詞 が 用 いられ 、後続文 の 終結語尾 に 制約 はない 〔延世〕 (例) 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삽니다. 철수가 책을 사서 동생에게 선물했다. 의자에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모두들 교실에 들어가서 공부합시다. ・先行文と後続文の主語は同一である〔白〕 ・「~ので」と言い換えられない〔菅野〕 ・「 해서 」は前後の行為が密接な関係を持つ時に使われ、「 하고 」が前後の行為の関連性なしに時間的な前後関係を主に表す点で文法性や意味の差異を見せる〔国語院〕 (例) 학교에 가서 공부했어요. ( その 友達 と 一緒 に ) 친구와 만나고 영화를 보았어요. ( その 友達 とは 関係 なく 、1人 で 、 あるいは 別 の 人 と ) ・ 「 해서 」 の 場合 は 先行文 と 後続文 の 因果関係 があり 、「 하고 」 の 場合 は 因果関係 がない 〔林〕 (例)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그 돈으로 점심을 사서 먹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고 그 돈으로 영화를 보고 , 집에 가서 엄마가 만들어준 … 점심을 먹었다.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텔레비를 껐어요.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텔레비를 끕시다. 드라마가 재미없으니까 텔레비를 끕시다. 그는 어려서 매우 똑똑했어. 그는 3 개월에 걸쳐서 그 곡을 완성했다. ・・・いかがでしょうか? これはあくまでも「文法書」上の分類ですので、実生活では双方入り交じって使われているのが実状だと思います。 また、意味の「重なり」のある「先行」「原因・理由」「状態」の3つについては、相互置き換えが可能な場合とそうでない場合があると思います。 皆さんでそれぞれの 하고 を 해서 と、 해서 を 하고 と置き換えてみて、「おかしい」か「おかしくない」か確かめてみて下さい。 <参考文献> 〔林〕 林鍾大 2004 『 』東京: DHC 〔菅野〕 菅野裕臣監修 , 朝鮮語学研究会編著 1987 『 』東京:三修社 〔国語院〕 국립국어원 2005 『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 2- 용법 편 』 서울 : 커뮤니케이션북스 〔白〕 백봉자 1999 『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 사전 』 서울 : 연세대학교출판부 (日本語版『 』東京:三修社) 〔延世〕 林瑚彬・洪璟杓・張淑仁 1989 『外国人 のための 韓国語文法』 ソウル :延世大学校出版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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疑問文으로 實現된 ‘

으로 意味

バラバラに見るとわかりにくいので、意味の「重なり」を上の図で表してみました。 ご覧の通り、「先行」「原因・理由」「状態」の3つの意味において、「重なり」が見られます。 逆に言えば、それ以外の意味はそれぞれどちらかに「特有」のものだということです。 次に、それぞれの【用法】を例文と共に詳しく見ていきましょう。 (空間的羅列・主語1人) 나는 피아노를 치고 , 동생은 노래를 불렀습니다. 先行文の動作は完了したものと理解される〔延世〕 ・先行文と後続文の主語は同一である〔白〕 ・ 하고서 、 하고 나서 と置き換えが可能〔白〕 ・先行文と後続文の位置を逆にできない〔林・白〕 (例) 아침밥을 일찍 먹고 학교에 갔습니다. 손을 잡고 기뻐했다.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다. 先行文 の 動詞 は 動作動詞 が 用 いられ 、後続文 の 終結語尾 に 制約 はない 〔延世〕 (例) 시장에 가서 여러 가지 물건을 삽니다. 철수가 책을 사서 동생에게 선물했다. 의자에 앉아서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모두들 교실에 들어가서 공부합시다. ・先行文と後続文の主語は同一である〔白〕 ・「~ので」と言い換えられない〔菅野〕 ・「 해서 」は前後の行為が密接な関係を持つ時に使われ、「 하고 」が前後の行為の関連性なしに時間的な前後関係を主に表す点で文法性や意味の差異を見せる〔国語院〕 (例) 학교에 가서 공부했어요. ( その 友達 と 一緒 に ) 친구와 만나고 영화를 보았어요. ( その 友達 とは 関係 なく 、1人 で 、 あるいは 別 の 人 と ) ・ 「 해서 」 の 場合 は 先行文 と 後続文 の 因果関係 があり 、「 하고 」 の 場合 は 因果関係 がない 〔林〕 (例) 은행에서 돈을 찾아서 그 돈으로 점심을 사서 먹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고 그 돈으로 영화를 보고 , 집에 가서 엄마가 만들어준 … 점심을 먹었다.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텔레비를 껐어요. 드라마가 재미없어서 텔레비를 끕시다. 드라마가 재미없으니까 텔레비를 끕시다. 그는 어려서 매우 똑똑했어. 그는 3 개월에 걸쳐서 그 곡을 완성했다. ・・・いかがでしょうか? これはあくまでも「文法書」上の分類ですので、実生活では双方入り交じって使われているのが実状だと思います。 また、意味の「重なり」のある「先行」「原因・理由」「状態」の3つについては、相互置き換えが可能な場合とそうでない場合があると思います。 皆さんでそれぞれの 하고 を 해서 と、 해서 を 하고 と置き換えてみて、「おかしい」か「おかしくない」か確かめてみて下さい。 <参考文献> 〔林〕 林鍾大 2004 『 』東京: DHC 〔菅野〕 菅野裕臣監修 , 朝鮮語学研究会編著 1987 『 』東京:三修社 〔国語院〕 국립국어원 2005 『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문법 2- 용법 편 』 서울 : 커뮤니케이션북스 〔白〕 백봉자 1999 『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문법 사전 』 서울 : 연세대학교출판부 (日本語版『 』東京:三修社) 〔延世〕 林瑚彬・洪璟杓・張淑仁 1989 『外国人 のための 韓国語文法』 ソウル :延世大学校出版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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